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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삼일절 플러스

오늘은 삼일절이다. 이 날을 미국에서 자라나는 우리 이민 2세나 3세 등 후세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쓴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3.1절은 물론 8.15 6.25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모를 뿐 아니라 무관심 내지는 무감각하다. 우리 나라에 대한 역사 의식이 없어 보인다. 한국이 그러한데 미국 이민사회에서 이 문제는 더욱더 심각하다. 우리 역사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의 중요한 기념일인 3.1절을 모른다면 큰일이다. 1919년 윌슨 미국 대통령이 말한 민족자결주의 독트린에 힘을 얻고 호응하여 기미년 3월 1일에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에 대항하여 일본 경찰의 총칼에 무릎 꿇지 않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며 전국민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봉기한 날! 그날의 거사는 우리 역사에 잊어서는 안될 뿐 아니라 기념하고 거기에다 플러스 우리의 국민적 존엄성을 찾아야 한다. 특히 그날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낭독한 독립선언문이야 말로 우리 국민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문헌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국시요 진정한 주체사상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망각하는 젊은이라면 마이너스 세대다. 거기에 반해서 한국민 전체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역사의식을 가지고 사는 플러스 세대가 되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삼일절 기념 플러스란 그러한 정신과 애국심 그리고 독립선언서의 사상을 더하여 우리 민족의 단합을 가져오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을 삼자는 말이다. 3.1절 플러스는 비단 한국에서만 있어서는 안되리라! 해외에 흩어져 사는 700만 디아스포라 한인 모두 특히 2세와 3세 후세대에게 알리고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요즈음 일본 아베 총리의 망언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태도 그리고 우경화를 부르짖는 일본인들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그리워하는 듯한 태도야 말로 역사의 마이너스 작용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무참하게 짓밟은 불쌍한 위안부! 그 부끄러운 역사의 과오를 회개하기는커녕 독도를 자기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36년 동안 짓밟혔던 한국민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지 않은가! 이런 때에 우리 후세들이 그 역사적 배경과 진실을 배우고 바로 알도록 하는 것은 우리 3.1절 플러스 세대들이 해야 할 일이라 믿는다. 3.1절의 만세운동에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회의 큰 역할이 있었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에 여러 명의 기독교 목사가 있었다는 것은 큰 플러스였다. 오늘 교회들이 기미년 3.1절 플러스 운동에 참여해 후세 청년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전국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한인 디아스포라가 있는 곳에 어디에나 있는 한국문화학교 내지는 한글학교에서 3.1 플러스 정신을 더욱더 의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3.1 플러스 정신은 곧 우리의 정체성이요 우리 민족의 자존감이요 우리의 주체성에 대한 긍정적 플러스다. 김해종 목사.전 연합감리교 감독

2014-03-03

워싱턴 3.1절 행사 주관단체 불명확

워싱턴 지역 한인사회를 대변하는 한인회들이 주최한 3.1절 행사가 1일 몽고메리 카운티에서 열렸으나 주관 단체가 불명확해 논란이다. 워싱턴 한인연합회(회장 린다 한)와 버지니아 한인회(회장 홍일송), 수도권 메릴랜드 한인회(회장 서재홍) 등 3개 한인회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지역을 순번으로 개최하는 3.1절 행사가 지난해 버지니아 개최에 이어 올해에는 메릴랜드에서 열렸다. 특이한 점은 올해 주관이 ‘중동부 한인회 연합회’라고 공고된 점이다. 현재 워싱턴 지구를 포함하는 한인회 연합 명칭을 가진 단체는 ‘동중부 한인회 연합회’(회장 김태환)와 ‘한인연합회’ 등 2개 이다. 그러나 이번 행사를 알리는 공고에는 동중부 한인회가 아닌 중동부 한인회 연합회라고 명시돼 참석자들을 궁금하게 했다. 정작 당일 행사는 그러나 수도권 메릴랜드 한인회 명의의 ‘제 95회 삼일절 기념식’ 안내장을 나눠줘 참석자들이 “정확한 행사 주관단체가 어디냐”라며 궁금해했다. 미 동부 워싱턴 해병 전우회의 국기게양식으로 시작된 행사는 애국가와 미국가 제창에 이어 최정근 상록회 부회장의 독립선언서 낭독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간에 인근 고교 미국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나와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을 불러 3.1 절 행사 참석자들이 다소 의아해 하기도 했다. 김태환 동중부 한인회 연합회장은 기념사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바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2014-03-03

“3.1 정신, 후대에게 이어주자” MD 3.1절 행사 다채롭게 펼쳐

일본제국주의의 억압에 항거, 당당한 자주국임을 대·내외에 선포한 95년 전 3.1 만세 운동이 메릴랜드 곳곳에서 재현됐다. 메릴랜드 한인회(회장 장두석)과 메릴랜드 교회협의회(회장 최정규 목사)는 제 95주년 3.1절 기념식을 1일 엘리컷시티에 위치한 벧엘교회에서 개최했다. 최정규 목사는 “3.1절을 통해 조국의 귀중함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다음 세대도 이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두석 회장은 “대한민국의 4대 국경일 중 2개가 일본과 관련이 있다면서 가면을 쓴 일본을 우리는 결코 무심코 넘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3.1. 절 기념식에는 독립 유공자 후손들(김은, 이진성, 박재영)이 참석, 뜻을 더했다. 워싱턴 총영사관 정기용 영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대독했다. 하와이에 거주하다 최근 메릴랜드에 온 김영호씨의 선창으로 참석자들은 만세 삼창을 하며 3.1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메릴랜드 한인노인회(회장 황정순)도 이날 오전 10시 컬럼비아 위치한 장수노인센터에서 3.1절 기념식을 개최했다. 황 회장은 “한국 사람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우리의 둥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한마음으로 뭉쳐 살아가자”고 역설했다. 허태준 기자

2014-03-03

대형 태극기 들고 시가행진에 애국심 절로 느껴져

지난 1일 중가주 리들리·다뉴바 삼일절 행사는 2012년에 이어 두번째다. 전날까지 비가 많이 왔지만 다행히 이날은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을 뿐 행사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참석 한인들은 이민역사를 체험하고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던 뜻 깊은 행사였다고 평했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시골 마을에서 펼쳐진 퍼레이드는 지역사회에도 커다란 볼거리였다. 1시간 정도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길가로 주민들이 나와 박수로 환영했으며, 일부는 기자에게 "무슨 행사냐"고 물어보며 관심을 표명. 퍼레이드가 끝나는 지점에서 행사를 목격한 한 주민은 "이런 좋은 행사를 미리 크게 알려주지 않은 언론사에 항의하겠다"고 말하기도. 한편 작은 농촌도시로선 큰 이벤트였음을 반영하듯, 경찰의 에스코트, 기마경찰, 마칭밴드 등 전폭적인 지원이 엿보였다. ○…미주3·1여성동지회 전상희씨는 "대형 태극기를 들고 시가지를 걸으니 그날 선조들의 애국심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조국과 민족을 생각할 수 있는 이런 행사가 한인사회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희망. 흥사단 단우 황근씨는 "이민 역사의 현장에서 당시의 역사를 체험하는 행사여서 뜻깊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역사체험 행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별 참석자들도 많았다. 한국에서 LA에 있는 딸 집에 왔다가 친척을 따라 행사에 참석한 모경민(74·성남)·황인경(70) 부부는 "미국 이민역사가 그렇게 오래 됐고, 약 100년 전에 이곳에서 독립 퍼레이드가 펼쳐졌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감격. 황씨는 "요즘은 삼일절이나 광복절 의미가 많이 퇴색돼 한국에선 이런 분위기조차 사라진 것 같다"며 "이런 행사를 통해 조국애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한국인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청소년들도 참석해 세대간에 애국심을 공감했다. 보이스카웃에서는 한인 청소년들 수십명을 참석시켜 행사 진행을 도우는 한편, 씩씩한 모습으로 퍼레이드를 펼쳐 어른들의 박수를 받았다. 또 일부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와 역사 현장의 기념물들을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리들리·다뉴바=이원영 기자

2014-03-02

[리들리·다뉴바의 이민 유산들] 실물 재현한 미니 독립문·애국지사 10인 기념비

리들리와 다뉴바엔 언제부터 한인들이 살았을까. 지금은 한인들이 거의 살지 않지만 2차 대전 말기엔 400~500명의 한인 농업이민자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하와이 노동 계약이 끝난 이민자들 중에서 샌프란시스코를 통해 본토에 입국한 2011명의 한인 이민자들 또는 후손들이다. 이들은 리들리와 다뉴바를 중심으로 중가주와 리버사이드 등으로 퍼져 초기 농업이민의 효시를 이룬다. 당시 캘리포니아 한인의 3분의 1이 리들리와 다뉴바에 살 정도로 중심지였다. 현재 두 곳의 공동묘지엔 231명의 한인 선조들이 잠들어 있다. 1920년 퍼레이드를 펼칠 당시 이들은 시간당 20~30센트 임금을 받고 과일·채소 농장에서 땀을 흘렸다. 그때 월 생활비가 10~15달러에 달했으니 이들의 고난이 짐작된다. 그런 와중에도 김호·김형순이 세운 '김 브라더스'라는 청과회사가 '털없는 복숭아'로 백만장자가 돼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댔다. 김호는 현재 LA에 '찰스 H. 김 초등학교'로 기념되고 있다. 그동안 프레즈노 주립대 차만재 교수가 중심이 된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가 유적지 보존 작업을 주도했다. 한국 보훈처도 예산지원에 나서 많은 기념물이 세워지는 데 힘을 보탰다. 리들리에는 독립문을 실제 4분의 1크기로 재현해 미니 독립문이 섰으며 안창호·이승만 등 애국지사 10명의 기념비가 옆에 세워져 있다. 퍼레이드의 산실이 된 다뉴바한인장로교회 자리에 세워진 기념비, 1938년 세운 리들리 한인장로교회, 김호·김형순의 자택 및 1921년 건립된 청과 사무실, 이승만·안창호가 묵었던 버지스 호텔, 231명의 한인 선조들이 영면하는 공동묘지 등이 그 시절 애국 이민선조들의 자취로 남아 있다. ▶참고 www.cckhs.org 리들리·다뉴바=이원영 기자

201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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